"그래서 나는, MBC 1층 <민주의 터>에 앉아 있다” (미디어스 / 임명현 / 2010-04-12)
촛불을 들고 외친다. 'MBC를 지키고 싶습니다'. 그렇다. 이번 싸움은 MBC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누구로부터 지켜내려는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권력으로부터 지켜내려는 것이다. <장악>이라는 말을 낳을 정도로
방송 개입에 대한 강도가 거센 지금의 권력으로부터 지켜내려는 것이다.
원래부터, MBC가 마뜩찮았던 현 정권이었다. 어느 언론보다 BBK와 다스 관련 의혹을 상세히 보도한 방송이 MBC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일하던 시절에도 '교통카드 사업자 선정 배경', '청계천 개발 비리 의혹' 등 '이명박
시정(市政)'의 어두운 부분들을 파헤쳐 온 방송이 MBC였다. 그러던 MBC가
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까지 경고하고 나섰고, 그 이후 촛불민심이 크게 확산돼 갓 출범한 정권에 강력한 타격을 가했으니 (지금 와서
결과적으로 보면 아주 강한 예방주사가 됐던 걸로 보이기도 하지만) MBC를 향한 미움과 경계심이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한 미움과 경계심은 강력한 탄압으로 되돌아왔다. 무슨 이적단체의 지도자들도 아니고 공영방송사의 PD들이, 집에도
못 들어가고 수 주일씩 회사에서 숙식을 거듭하다가 차례로 체포됐다. 회사를 향한 압수수색 시도도 수 차례였다. 신경민,
손석희 등 비판적 성향을 보인 유명 방송인들을 쫓아내다시피했다. 뉴라이트 출신 인사들로 방송문화진흥회를 가득 채워
PD수첩 진상조사를 추진하고, 노조와의 단체협약을 무력화하려 했다. 관례적으로 보장돼 온 사장의 인사권을 침해했다.
결국 버티다 못한 엄기영 사장의 자진사퇴를 이끌어냈고, 후임으로 '친MB맨'인 김재철 사장을 임명했다. 인사의 기준은
'판단력, 비전, 명석함' 따위가 아니라 '얼마나 권력의 말을 잘 듣느냐'였다. 그러던 김 사장이 취임 초기 노조를 향해
의외의 전향적 손짓을 보내자, <큰집>이 직접 나서 조인트를 까고 매를 들고 때려서 다시 원위치시켰다.
'말 잘 듣는 청소부'로 말이다.
잘못을 했다면, 부당한 탄압이더라도 그 이유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자. BBK 의혹은
특검이 직접 나서 당시 이명박 당선인의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발표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의혹들을 집중 보도한 언론에
정정보도 등 바로잡아야 할 의무가 주어진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지난해 말 잠깐 불거진 안원구 국세청 국장의 폭로는
이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궁금증이 여전히 적지 않음을 보여줬다.
PD수첩 역시 마찬가지다. 애당초 민사법정에서 풀었어야 할 문제를, 결혼 4일 앞둔 PD를 한밤중에 체포하고 작가의 이메일까지
까발려가며 억지로 강제로 형사법정에 넘겼지만 결과는 <무죄>였다.
오히려 그러한 탄압의 과정을 거치며 MBC는 적지 않게 순치된 모습도 보여줬다. 지금도 일부 진보적인 신문들이 앞장서
파헤치고 있는 4대강 사업의 문제점에 대해, MBC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PD수첩이 2차례에 걸쳐 다뤘을 뿐 뉴스나 다른
보도/시사프로그램에선 4대강 사업을 정면으로 겨냥하길 꺼렸다. 이전 정권과 달리 이명박 대통령의 동정/발언과 관련한
(비판 없는) 단순 보도가 크게 늘어난 반면, 최근 논란이 된 '독도발언'과 같은 부분은 피해가고 있다.
세종시, 노동관계법, 이건희 사면 등의 쟁점에서도 저널리즘이 수행해야 할 '판단'과 가져야 할 '시각'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다른 방송사도 비슷하지 않느냐 묻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이 퇴행의 시대에 순응하고 있음을 자인하는
또 다른 고백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퇴행의 시대. 더 이상 침묵할 수 있을까. 어떻게든 버티면 되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있다. 정권이 바뀌면 좋아지지 않겠냐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권력의 속성은 동일해서다. 이명박 정권에서의 언론 길들이기를 기억하고 있는
예비 권력이, 길들여진 언론이 얼마나 정권에 '편한가'를 기억하고 있는 예비 권력이, 언젠가 집권했을 때 '침묵하고 있는'
언론과 언론노동자들을 가만히 놔둘 리 없다.
그래서다. MBC를 지키는 건, 특정 권력으로부터 지키려는 것이 아니다. 완전히, 모든 정치권력으로부터 공영방송을 지키려는
것이다. 권력과 자본의 문법이 아닌, 저널리즘과 상식의 문법으로 움직이는 방송사. 권력과 자본의 입김이 아닌, 저널리즘이
진정 향해야 할 '시민'들의 입김에 민감한 방송사로서의 MBC를 지켜내고 싶은 것이다.
▲ 7일 열린 촛불문화제의 모습 ⓒ권순택
그래서 참아낸다. 막막함을 참아낸다. 파업이 언제 끝날까. 과연 예전처럼 일터에 돌아가 아이템만 생각하며 열심히 취재할 수
있을까. 그런 막막함을 참아낸다. 또한 불안함을 참아낸다. 이렇게 계속 일터를 비우고 있어도 되는 것인가. 파업이 혹여 우리
조직에 돌이킬 수 없는 상흔을 입히진 않을까. 그 역시 참아낸다. 다만 잊진 않는다. 언젠가 일터로 돌아갔을 때 독립적
저널리스트로서 수행해야 할 일들을 잊지 않는다. 더불어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 닥쳐올지 모를, 공권력과 고소-고발, 징계 등
제도적 탄압에 대한 두려움 또한 참아내려 한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MBC 1층 <민주의 터>에 앉아 있다.
출처 :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