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서점가 강풍을 일으킨 작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었다.
이 책... 내가 소설류를 안 좋아하는 이유를 모듬회처럼 골고루 다 갖춘 분노의 역작이다.
시작하자마자 신파여서 그만둘까 하다가... 그래도 산 책인데.. 끝까지 읽었다.
불편하다. 작가가 의도한 대로 독자는 많이 불편해 한다.
나라는 시점도 <네>의 시점으로 당돌하게 시작한다.
문학평론가 홍정수는 이 작품의 키워드로 '피에타의 귀환'이란 제목을 달았다.
읽어보니..그럴듯하다.
나의 어머니는 내 군대생활..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
난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 연애질 하느라 첫 휴가를 상경하여 보냈던 탓이다.
그 짧은 귀향의 시간을 난 지금도 풀지 못한 한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어떨 땐 혼자 포장마차에서 쏘주를 처 먹고 희떡희떡 울기도 한다.
신경숙이 말하고자 하는 여자는 엄마이기도 하지만 한 여자이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엄마의
딸이기도 하다. 우리는 왜 그 여인이 늘 엄마이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간다.
나도 그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자...
그 엄마는 천연의 한 여인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남편에게 무시당하고, 혼자 돈을 벌어야 했으며, 자식들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는
가방 끈 짧은 전형적인 촌 여자였다.
그래서 난 이 소설이 많이 불편했다.
다 아는 사실을 보자기 문양처럼 얽히고 섥히게 만들어 놓고 시점도 분할하여 갖은 고문을 다
해대고 있다. 작가의 문체가 적잖이 점잖고 차분해 독한 기운까지 풍기는 걸 느꼈다.
살을 찢어대고 피를 분탕질해야 잔인한 게 아니다.
너의 생각이,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 자식들의 생각이 온전치 않은 그 무엇이라는 것을
조각칼로 깍아내듯이 단어를 들이대면...
그건 지적인 고문이기도 하겠지만, 독자에 대한 폭력이다.
사람들은 그런 걸 느끼고, 즐기고, 또 반성까지 하고 뒤돌아 본다.
문학적 자아는 감정으로 돌변하고, 엄마를 다른 시각으로 보게 만드는 힘을 전달해 준다.
신경숙의 이 작품이 밀리언 셀러가 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우리 시대 엄마가 갖는 느낌과 그 딸들이 흐느껴야 하는 아픈 통증을 그녀는 경험하고
그것을 예리하게 공유해 내었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뭔가 미적지근한 느낌이 남는다.
왜냐면 나에겐 그걸 회복할만한 _ 작가가 에필로그를 만든 이유 중 하나 인_ 당사자가 이승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
라고 언제 불러 보았던가..
어머니라고 부르기도 전에 나의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엄마가 사라진 사이 나는 나이가 들고... 실존감 없는 엄마는 세상을 떠날 당시 그 나이로 기억에 남아있건만..
나에게 어느덧 어머니가 되었다.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에 있는 피에타 상 앞에 나도 가봤다.
24살의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그 대리석 상 앞에서 난 성모를 어머니와 연동시키지 않았다.
부탁하지도 않았다. 왜냐면 난 엄마를 잃어버리지도 잊어버리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