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올리기 전에...
매일 아침 눈을 떠 인터넷에 접속하면 오전이 후딱 지나가고, 점심 먹은 걸 소화시키려고 손에다 마우스를 쥐어주면 해가 뉘엿뉘엿 기울 때까지 쥐도 한번 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랬다. 이런저런 블로그를 몇 개나 갖고 있어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하면 제꺽제꺽 써서 올리곤 했었으니까. 그런데 정작 써야 할 소설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는 바람에 ‘큰 결심’을 하고 신년 정월 초하루에 모두 걷어치웠다. 블로그를 하나씩 닫으면서, 이제는 소설 좀 쓰겠구나 싶어 좋았다. 때 맞춰 근 10년만에 문예지에 장편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출판사와 새 장편을 출간하기로 계약도 했다. 그것도 세 개씩이나 한꺼번에. 그런데...몇 주 전, 험상궂은(!) 인상의 남정네 몇을 만나면서 상황이 좀(보다 좀 많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 끼어 있던 ‘선술집 주인’이 건네준 명함에 적힌 누리집을 찾아들어간 순간, 근 여섯 달 잘 콘트롤해 온 클릭질이 되살아난 것이다. 안장에 앉기만 하면 술집을 향하는 애마의 모가지를 댕강 잘라버렸던 김유신의 깜냥이 되지 못한 나는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하면 저절로 익스플로러를 눌러대는 내 손모가지를 처단할 순 없었다. "그래, 다모토리만..." 하면서 흐흐...침 흘리듯 웃음을 흘리는 모양새라니. 그리고 지금, 또 그 웃음을 흘리면서 중얼거린다. "그래, 요거 하나만 올리고..."
■ 좌파의 본연, 김규항

<예수전>, 김규항, 돌베개, 2009년
"나는 집이나 땅은커녕 내 명의로 된 아무런 재산도 없는 빈털털이긴 하지만 오늘 하루를 비루하지 않게 보낼 만큼의 문화자본은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내 삶을 기준으로 본다면 당연히 최소한의 상식이나 시민의 양식 따위가 중요하고 이명박만 물러난다면 살겠구나 싶고 이명박 패거리와 개혁 세력의 차이는 정말 엄청난 것이고 유시민 같은 사람의 현실적 가치는 상당한 것이다. 그러나 내 삶을 넘어서 비정규 노동자나 농민을 비롯한 정직하게 일하면서도 자존심과 인간적 위엄을 유지하기 힘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기준으로 본다면 이명박이 물러난다고 해서 달라질 건 거의 없고 이명박 패거리와 개혁세력의 차이란 정말 무의미한 것이고 유시민은 온갖 악덕을 다 가진 나쁜 사람인 것이다."(<예수전>을 내면서 김규항 자신이 작성한 프로필 중에서 /인용: 김규항의 블로그http://gyuhang.net)
내가 김규항을 처음 만난 것은 그의 두번째 저서인 <나는 왜 불온한가>를 통해서였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2005년 저물녘의 일이었을 것이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그의 블로그에 접속한 뒤, 훗날 다모토리에서 그러듯, 몇년간 쌓인 그의 글들을 다 훑고났을 때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별히 그를 사랑한 이유는 그의 준엄한 글들이 나 자신도 몰랐던 '나의 정체'를 밝혀내주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시절 박정희의 죽음과 전두환의 등장과 '광주'까지 겪고, 어떻게든 피하려 했지만 피할 수 없었던 군대까지 된통맞게 다녀온 뒤, 어느새 스물일곱이나 먹어버린 늙은 청년의 정체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4년 동안 뼈빠지게 평점 4.0을 유지했던 유능한(!) 자본주의의 충견 경영학도는 현대와 삼성으로, 태평양증권과 대한항공으로 떠나는 친구들에게 "개좃이다!"고 말해주는 시간도 아까워 도서관 참고열람실 너른 책상 위에 원고지를 펼쳐놓고 자신이 망명할 '정부 없는 나라'의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나는 공산주의자이거나 사회주의자였다. 그래서 '잡혀가면' 무정부주의자라고 할 요량이었다. 모든 작가는 생래적으로 진보주의자고 사민주의자고 무정부주의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 아침에 경영학을 버리고 문학을 택할 수 있었다. 오죽하면 천하의 오른쪽인 이문열의 소설들을 왼쪽으로 읽었겠는가! 어쨌든 나는, 동학혁명을 전공하는 절름발이 국사학과 대학원생과 군대갔다 와서 복학은 안 하고 전국의 시위현장을 '청산(靑山)' 삼아 떠돌아다니는 동생의, 원고지 300장 짜리 이야기로 소설가가 되었다. 그런데 조짐이 이상했다. 심사위원 중의 하나였던 운동권문학의 대부격인 평론가 임헌영이 내 소설을 당선시키면서 "시각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일침을 놨다. 내 소설에 담긴 허무의식을 문제삼은 듯했다. 진보주의자의 본연은 '삐딱'이다. 나는 데뷔하자마자 삐딱해졌다. 군대이야기를 줄기차게 울궈먹고, 바둑 이야기를 하고, 실업자 얘기를 썼다. 간간이 삼청교육대 이야기를 썼지만, 간간이 "이상한 놈"이라는 뉘앙스가 담긴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내 정체는 공산주의자거나 사회주의자거나 무정부주의자였다. 누가 뭐래도, 그 정체는, 내 몸안에 깊게 뿌리내린 것이었다. 그런데 20년쯤 지난 뒤에, 그러니까 자칭 'B급좌파'라는 김규항을 읽고서 그 정체가 돌변했다. 나는 '오른쪽'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좋게 말해줘도, 김규항 식으로 표현하자면, 기껏 '자유주의자'일 뿐이었다. 가치의 중심을 '자기 자신'에 두고, 그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국가와 세계를 해석하는, 그래서 '내가 잘 살아야 못 사는 남을 도울 수 있음'을 대단한 모토로 삼아 돈벌이에 관한 한 어지간히 비겁해도 슬쩍슬쩍 눈감아주는, 그러면서 입으로는 자유와 평등과 봉사와 정직을 쉼없이 뇌까리는 자 - 였던 것이다.
김규항의 첫 저서인 'B급좌파'를 뒤이어 읽었다. 그의 시간을 거슬러 갔는데, 그는 여전했다. 온전하고, 건전하고, 냉철한 의인이었다. 두 살이 아래였지만, 그는 스무 살은 많아 보였다. 그리고 나는, 물론, 당연히, 정체를 바꾸었다. 적어도 투표에서만큼은. 나는 사회당 후보와 민노당 후보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리고, 민노당 후보를 '대안 지지'했다. 전두환의 번쩍이는 대가리를 향해 명패를 집어던져서 30년 동안 쌓인 체증을 완전히 스러지게 만들어주었던 노무현의 당을 지지하지 않은 까닭도 거기 있었다. 며칠 전, 나는 김규항의 최근작인 <예수전>을 읽었다. 올해 연재를 시작한 장편소설의 참고도서이기도 한 '마르코복음 해설서' <예수전>은 내 주변에 널린, 성경과 예수와 기독교에 대한 온갖 빈곤과 박약과 상상력 부재를 확인시켜준 책이었다. 김규항은, 예수에 관한 소설을 쓴다고 하니까 선뜻 서가에서 일란 파페의 <팔레스타인 현대사>를 꺼내준 내 친구(허태수 목사: 언젠가는 이 사람 얘기도 쓸 생각이다) 이후로 내 영혼을 호되게 후려친 신학자였다. 그는 오강남이나 해방신학적 성격을 지닌 하비 콕스와는 또다른 품격의 예수 해석자였다. 그에게 예수는 오늘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운명과 궤적을 같이하는 '민족과 국가의 해방'을 갈구하는 투사인 동시에 근원적으로 자유와 평등의 상징인 '하느님'을 인간의 세계 안에서 실현하려다가 그 실현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거부하고 반역하는 무리들에 의해 처형당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뭉뚱그린 표현으로는 <예수전>이 지닌 김규항의 사랑과 근원에 대한 힘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그것을 읽을 때에야 비로소 많은 기독교인들이 더러는 잃어버리고, 더러는 애써 부인하고, 더러는 아예 알려고 하지 않았던, 그리고 더러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예수를 온전히 만날 수 있다. 참으로 읽어보시길, 강추한다.
오늘자 한겨레신문에 김규항의 칼럼이 실려 있다(http://www.hani.co.kr/arti/SERIES/57/362206.html). 김규항의 블로그에서 하루 일찍 그 글을 읽었지만, 오늘 아침 배달된 신문에서 다시 읽으면서 그의 생각이 얼마나 상식적인지를 새삼 확인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그다지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지 않다. 그의 생각은 자주(보다 더 자주) 상식과는 중뿔나게 다르고, 파격적이고, 심각하며, 기분 나쁘게 받아들여지곤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는 이 현상을 오히려 세상을 읽는 선명한 잣대 쯤으로 여긴다. 최근 노무현의 죽음과 관련된 그의 일련의 글들을 읽어보면, 그 선명함은 더 또렷해진다. 이 글들 역시 다모토리의 식구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여기까지다.(아~ 숨차~)
* 덧글:‘휴지통’에 글을 쓴다는 게 썩 마음에 든다. 겉만 근사한 데다 올려논 글이 나중에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쓰레기통에다 처넣는 건 근사한 일이다. 어째, 자조의 기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솔직한 심정이다.
저도 당장 그리고 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칼럼에 씌여진 작가의 말대로...
" 예나 지금이나 좌파의 존재적 모순은 대개의 좌파들이 자신이 대변하는 계급 자체가 아니라는 것,
그 계급의 인민들의 현실 속에서 실제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좌파는 늘 그 모순에 긴장해야 한다."
제가 울나라 좌파를 인정하지 않고, 심각하게 존중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똑똑한 놈들이 교육을 받고 현장에 들어가 살신성인을 벌입니다.
그들은 자신 스스로를 역사의 현장에 투척한 열사들이라 생각하며 깨우치지 못한 민중을 위해 존재합니다. 늘 가진자는 그 속에서도 계급이라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죠
그 밑에서 노동운동을 하며... 역사의 기울기를 반듯하게 들여 올리고자 무수하게 노력한 수 많은 민중들은 일개미들로 전락해버립니다...물론 아직도 현장에서
자신의 이념을 시험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이제 그들은 현장이란 본류에서 떠나 - 민중과 소수를 위한 정치를 한다는 거대한 이념의 완성을 위해- 본래의 자기 무대로
되돌아 가 버립니다. 휴가갈수 있는 좌파, 휴가 나간 좌파들이 너무도 많은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죠....
사실 어찌보면 저는 그들의 승리를 어떨때는 절실히 바라기도 하는 자유주의 우파 즉, 딴나라류가 말하는 B급 좌파쯤 되겠습니다. 얼마전 술자리에서 그런 말이
나왔드랬죠... 사진하면서 기획도 곧 잘 하는 다큐 사진가가 있는데..노회찬이 서울시장 후보 5위까지 올라갔다구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누군가가
(확실히는 제가) 그랬습니다. 노회찬이 되면 나도 좋겠는데..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하겠냐? 그러자 전쟁이 터졌슴다. 언제까지 사표 운운할거냐....
이젠 노동자, 시민을 대변하는 권력이 창출되어야 한다고 불라불라.... 아이 뭐 내가 뭐라 그랬나... 나도 되면 좋겠다고 한건디.. 나도 노회찬 좋아한다니까....
그런거죠... 선명성, 진정성 류 등을 보고 인물을 탐구하지만 사상적인, 계급적인, 부분의 개혁의 시나리오까지는 그 옛날 PD냐 NL이냐를 놓고
대가리를 쪼개되며 싸우던 상식 수준이상 이나 그 이하도 돌파하지 못한 군중이라는 것입니다. 조금은 감상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온 온건류들에게
<좌파>라는 그 단어가 가지는 투쟁성은 그래서 가독성이 뛰어난 하이틴 로맨스 정도로 가끔 다가온다는 것이기도 하구요...ㅉㅂ
* 강돌형님..이 쓰레기통이 진짜 근사한 이유는요...주인도 모르게 모든 게시판글이 갑자기 버려질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전에도 몇번 그런 적이 있었읍죠...^^;